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년간의 혼란 (문단 편집) === 695 ~ 705년 === 그러나 [[레온티오스]] 역시 697년, [[우마이야 왕조]]에게 [[카르타고]]를 빼앗기면서 인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레온티오스는 카르타고를 탈환하기 위해 게르만족 출신 장군 아프시마로스를 지휘관으로 한 병력을 보냈으나 실패했고, 아프시마로스는 반란을 일으켜 제위를 찬탈했다. [[레온티오스]]는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 했던 것처럼 코와 혀가 잘리고 달마티아의 수도원에 유폐되었다(...). 아프시마로스는 이름을 로마식으로 바꾸어 [[티베리오스 3세]]로 즉위하였다. 이로써 [[티베리오스 3세]]는 로마 제국의 최초이자 마지막 게르만족 황제로 즉위했다. [[티베리오스 3세]]는 [[카르타고]]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그의 동생인 헤라클리오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소아시아와 시리아에서 성공적인 군사 활동을 벌였다. 이 티베리오스 3세의 치세는 20년간의 혼란의 시기 중 가장 안정적인 시기였으며, 이슬람군을 상대로 역습을 가하여 세바스토폴리스 전투로 상실했던 아르메니아를 잠시 수복하기도 했고, 지중해의 제해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케르손으로 추방당한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그곳에서 힘을 길렀고, [[슬라브족]]과 [[불가리아 제1제국|불가르족]]을 끌고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격했다. 그러나 전에 했던 짓이 있는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이 받아들일리 없었고,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는 엄청난 욕과 조롱이 쏟아졌다. 이에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수도를 몇명의 병사들과 함께 직접 타고 들어가 블라케르니아 궁전의 경비병들을 해치우고 궁전을 점거했고, 이 소식을 접한 [[티베리오스 3세]]는 비티니아로 도망쳤다. 결국 시민들은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 굴복했고,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복위에 성공했다.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티베리오스 3세와 [[레온티오스]]를 체포했다. 두 사람은 사슬에 묶인 채 시내를 가로질러 원형 경기장을 돌았고 시민들은 그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오물을 던졌다. 그 후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그들의 목에 발길질을 한 번씩 가한 다음 참수했다.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자신을 복위시켜준 대가로 불가르족의 왕 [[테르벨]]을 제국의 부제로 임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